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,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.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시카고 대화재 (문단 편집) == 진행 == 시카고 대화재는 1871년 10월 8일에 시작되었다.[* 공교롭게도 같은 날 [[위스콘신 주]]의 '페시티고'라는 도시 근처 숲에서도 초대형 [[산불]]이 발생해 최소 1,500명 이상의 희생자를 발생시켜 산불 희생자 수 역대 1위로 남아 있다.] 원인은 알 수 없다. 캐서린 올리어리라는 이주민의 암소[* 리더스 다이제스트의 "The Great Disasters"에서는 "미국 역사상 제일 유명한 [[소]]"라고 평했다.]가 헛간의 등불을 걷어찬 데서 비롯되었다는 설이 있었지만, 결론적으로 이는 당시 신문 기자가 꾸며낸 소설에 가까운 이야기였다.[* 어느 정도 증거가 밝혀지기 전까지는 이게 정설로 받아들여지고 있었다. 당시 올리어리 부인의 집에서 일하던 잡역부([[문맹]]이라서 이름을 X라고 서명)가 법원에서 증언한 내용을 토대로 했기 때문. 그러나 정황 증거상 증언이 실제와 맞지 않는 부분이 많아 현대 [[사학자]]들에게는 정설로 받아들여지지 않는 중이다.] 여러 가지 다른 설도 있지만 현재 일반적으로 인정받는 설은 없다. 당시 화재는 수평 화재였다. 한 곳에 불이 나면 가연성 물질로 지어진 다른 건축물에 순식간에 옮겨 붙었다. 화재가 나기 직전 한 주에만도 20건의 화재를 다루었던 시카고 시 소방 당국은 화재 신고가 들어왔을 때 신속히 대응하지 못했고, [[소방관]]들이 도착했을 때는 많은 수의 목조 주택과 농장이 불길에 휩싸인 데다가 강한 바람이 불길을 걷잡을 수 없이 퍼뜨리고 있었다. 목조 건물, 도시에 쌓여 있는 많은 양의 재목, 나무로 된 보도가 불길이 타오르는 데 일조했다. 하필이면 당시 시카고에서 축산 [[엑스포]]가 열리고 있었는데 이 때문에 축사들 사이사이에는 나무 [[보도블록]]과 [[톱밥]]을 섞은 흙들이 여기저기 널려있기까지 했다. 소방국은 비교적 폭이 넓은 시카고 강을 마지노 선으로 삼아 진화에 나섰지만, 불길은 '''시카고 강을 건너''' 상수도 시설을 파괴했고, 따라서 [[소방관]]은 더욱 애를 먹었다. 불길이 일정 수준 이상의 규모로 일어나면 [[파이어스톰|화재 폭풍]]이 일어나는데, 이 불의 회오리는 불똥을 마구 사방에 흩뜨린다. 대형 산불에서나 볼 수 있는 현상이 시카고 도심에서 벌어진 것. 실제 증언에 의하면 베개만 한 불덩이가 시카고 강을 건너서 떨어지는 광경을 보았다고 한다. 10월 9일 월요일 이른 오전에는 중앙 상업 지구가 황폐해지고, [[은행]]들도 모조리 불에 타버렸다. 지하의 은행 금고들은 불길로부터 버텨냈지만 며칠 동안 문조차 열 수 없었는데, 그 이유는 문을 열자마자 [[백 드래프트 현상|외부 공기와 접촉하면 과열된 금고 안에서 자연 발화가 일어나]] 내용물이 모조리 타버릴 것을 우려했기 때문. 새로 지은 [[오페라 하우스]]와 [[법원]] 건물도 불탔다. 카운티 홀(군청)의 종탑은 오전까지 버텼으나 그날 오후 결국 지하로 떨어지고 말았다. 이 지역에서만 수천 명이 불길을 피해 피난을 가야 했다.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-BY-NC-SA 2.0 KR으로 배포하고,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.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.캡챠저장미리보기